유로2008도 열리고 축구에 관심 있는 분들 한번 읽어보시라 글을 써봤습니다.
제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 이전에도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재미있게 보곤 했지만 그 관심의 깊이가 한층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월드컵 직후 한국팀의 좋은 성적이 대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무척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알아낸 곳이 후추라는 사이트였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각 스포츠에 대해 관심 많은 분들이 글을 올리는 공간이라 제게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그 중 축구 카테고리를 찾아 지난 글들을 읽어보던 중 제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한국 축구에 희망이 보인다' 라는 제목이었는데 그 글의 작성 시점이 2001년 5월 대륙간컵 대회에서 프랑스에게 5-0으로 지던 날이었습니다. 그 경기 후 히딩크가 오대영 감독이란 별명으로 줄곧 불렸는데 이 분은 오히려 희망이 보인다고 썼으니 저의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었지요.
그의 분석에 따르면 히딩크는 한마디로 플랫(일자) 수비를 시도하고 압박 축구를 구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90년 월드컵에서 이미 유럽은 이 압박 축구의 흐름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90년 대회에서 우리는 힘 한번 쓰지 못하고 3패로 탈락했는데 이후에도 국내 지도자들은 여전히 세계 축구 동향에 둔감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히딩크는 여태껏 한국 축구에서 그 어떤 감독도 쉽사리 시도하지 않은 수비와 압박축구 형태를 띠는 토탈 사커를 시도하려 한 것입니다. 토탈 사커라 하면 흔히 알듯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이 맞습니다. 그러나 공격할 때 모두 공격, 수비할 때 모두 수비가 아니라 공격수가 공격하다 공을 뺏기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최일선의 수비수 노릇을 해야한다는 뜻이지요. 상대 수비수가 전진 패스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할 임무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상식적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당시까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볼 소유가 상대에게 넘어가는 순간 수비는 수비수의 몫이라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거죠. 히딩크는 이러한 기초적인 것들을 선수들에게 체화시키려 노력했던 것입니다.
히딩크가 오기 전 국가대표팀의 포맷은 일대일 수비를 바탕으로 하는 스위퍼 시스템이었습니다. 스위퍼를 두는 이유는, 최종 수비수가 상대 공격수에게 뚫리면 바로 단독 찬스를 내주므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질적으로 스위퍼가 최종 수비수인 셈이죠. 스위퍼가 때로는 공격도 합니다. 팀이 지고 있을 때 공격 강화를 위해 위로 올리가기도 하는데 이 때 바로 '리베로'가 되는 것입니다. 94년 월드컵에서 홍명보가 뽑은 2골은 이 리베로 역할 수행 시에 나온 것입니다. 98년 월드컵에서 스위퍼 시스템을 쓴 팀은 딱 두 팀이었습니다. 마테우스가 있는 독일과 홍명보가 있는 한국. 다른 팀들은 모두 플랫 수비를 바탕으로 한 지역 수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대일 수비의 단점은 선수들이 상대 선수를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느라 체력 소모가 크다는 점입니다. 후반 중반 이후 한국 축구에 늘상 따라다니던 말이 '체력 저하'였다는 것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네덜란드를 이끌던 히딩크는 한국 팀의 연습 장면을 본 뒤 최전방 공격수 둘에게 서로 대각선 방향으로 교차하며 공격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연습할 때 공을 일부러 세게 찰 것을 주문합니다. 네덜란드라는 이름과 그들의 연습 장면을 본 선수들은 일단 심리적 열세를 보인 채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수비수들끼리 동선이 엉키기도 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수비가 중앙으로 몰릴 때 양 측면에 빈 공간을 쉽게 내준 것입니다. 이 공간에 오베르마스나 데부어 같은 빠른 선수들이 들어와 슛팅 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결국 5-0으로 지고 말았죠.
히딩크는 부임 이후부터 성적과 관계없이 자신의 스케쥴을 고수합니다. 선수들에게 플랫 수비와 Zone을 기본으로 한 압박 축구를 가르치고 중간 중간 어려운 시험 문제를 내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살피듯 강팀과의 연습 경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2002년 초부터는 그 유명한 '공포의 삑삑이', 곧 체력 강화 훈련에 들어갑니다. 언론이나 국내 축구 감독들의 비난 속에서도 그는 꿋꿋했습니다. 심지어 조모 감독에게는 초등학생한테 고교 수학을 가르치는 격이라는 비판까지 받았습니다. 히딩크가 무얼 하고 있는 지 잘 아는 이용수 기술위원장만이 옆에서 든든히 지켜줄 뿐이었습니다.
히딩크가 하루 1%씩 16강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할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와 치른 평가전에서 좋은 결과를 내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개막 이후엔 더 놀라웠습니다. 홍명보가 최종 수비수간의 호흡 불일치를 걱정하며 두려워했던 플랫 수비는 자리를 잡았고 보란듯이 수비 라인이 위쪽으로 올라가 미드필드진과의 간격을 좁혔습니다. 오프사이드에 부담을 느낀 상대 공격수는 활동 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연스레 우리 선수들의 체력 소모도 줄여주는 효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는데 수비라인이 올라온 상황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컸다는 것입니다. 상대 미드필더가 전방으로 볼 배급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인데 김남일은 이를 100% 잘 수행했습니다. 쉽게 볼 배급을 허용했으면 골키퍼와 1:1을 내주는 상황이 허다했을 것입니다. 여하튼 Zone의 개념을 확고히 한 선수들은 상대 선수의 동선을 주시하며 상대에게 볼 소유가 넘어가는 즉시 방사형으로 가장 가까운 선수들이 에워싸는 압박을 가했습니다. 98월드컵 우승 감독인 에메 자케는 이를 보고 최고의 압박을 보여준다고 격찬을 할 정도였습니다.
히딩크는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도 했습니다. 그 첫번째가 볼 점유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볼 소유가 넘어가 있는 시간은 우리에게 실점을 허용할 확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여 무모한 전진 패스는 지양하고, 특히 상대 수비진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뻥 차내는 패스는 하지 말아야 할 나쁜 습관에 들었습니다. 차는 순간 우리의 소유가 될 확률이 극히 적은 패스에 해당되었으니까요. 차라리 후방에서 백패스나 횡패스를 할지언정 말이죠.
히딩크는 감독 재임 중 경기 결과를 가지고 선수 탓을 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평소 분발을 요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혹은 경쟁심을 유발하여 경기력의 극대화를 꾀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했을진 몰라도 경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선수에게 묻는 일은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주어진 선수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연구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외부에서 그를 공격해도 그는 선수들의 신뢰를 전폭적으로 이끌어냈으며 16강 진출 후 자칫 해이해질 수 있는 선수들을 다잡기도 했습니다. 그의 심리전술 활용이 팀 피치를 올리는 데 톡톡한 효과가 있었음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이후 이탈리아 선수들이 거칠고도 지저분한 파울을 많이 하는 것을 아는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그들의 페이스에 말리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그가 데리고 있던 골키퍼 카시야스의 습관 및 다른 선수들의 킥 습관까지 알려줍니다. 이토록 그의 화려한 이력 속에 녹아 있는 경험은 우리 선수들의 세계(유럽) 축구에 대한 경험 부족을 훌륭히 메워주었습니다.
월드컵 후 그의 성공에 자존심 상한 일부 국내 감독들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자신들에게도 중간에 흔들지 않고 기회를 준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죠. 그러나 저는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스포츠 기자든 축구 감독이든 그 누구도 히딩크가 5-0으로 지는 날, 제대로 분석해 말해 준 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후추라는 사이트에서 그 글을 읽지 않았다면 저는 그냥 운 좋은 감독 아니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근엄한 선생님 감독, 차범근도 선수들의 재능이 거기까지 발휘될 수 있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제게 우리 선수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극대화시켜준 히딩크는 그저 고마운 존재입니다.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것도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ps.모레 새벽 히딩크 감독은 조국 네덜란드와 일전을 갖습니다. 기세가 오른 러시아지만 아무래도 현재의 네덜란드에게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모래알 조직력이라 일컫는 팀입니다. 선수들의 개성이 다양하여 한데 묶기가 힘들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지금까지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토탈사커의 창시자이자 네덜란드 축구계의 조순 선생님 혹은 변형윤 선생님같은 리누스 미셸 감독이 지휘하던 74월드컵, 유로88 그리고 카리스마의 히딩크가 지휘하던 98월드컵이 고작입니다. 그런데 지금 네덜란드는 80년대말 90년대 초 이름을 날리던 오렌지 3총사의 일원, 반바스텐이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명성과 카리스마가 어우러져 빛을 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이에 한껏 부응하고 있구요. 히딩크가 기던 러시아를 뛰게 만들었으나 날고 있는 네덜란드에게 어렵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 봅니다.
제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 이전에도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재미있게 보곤 했지만 그 관심의 깊이가 한층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월드컵 직후 한국팀의 좋은 성적이 대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무척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알아낸 곳이 후추라는 사이트였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각 스포츠에 대해 관심 많은 분들이 글을 올리는 공간이라 제게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그 중 축구 카테고리를 찾아 지난 글들을 읽어보던 중 제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한국 축구에 희망이 보인다' 라는 제목이었는데 그 글의 작성 시점이 2001년 5월 대륙간컵 대회에서 프랑스에게 5-0으로 지던 날이었습니다. 그 경기 후 히딩크가 오대영 감독이란 별명으로 줄곧 불렸는데 이 분은 오히려 희망이 보인다고 썼으니 저의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었지요.
그의 분석에 따르면 히딩크는 한마디로 플랫(일자) 수비를 시도하고 압박 축구를 구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90년 월드컵에서 이미 유럽은 이 압박 축구의 흐름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90년 대회에서 우리는 힘 한번 쓰지 못하고 3패로 탈락했는데 이후에도 국내 지도자들은 여전히 세계 축구 동향에 둔감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히딩크는 여태껏 한국 축구에서 그 어떤 감독도 쉽사리 시도하지 않은 수비와 압박축구 형태를 띠는 토탈 사커를 시도하려 한 것입니다. 토탈 사커라 하면 흔히 알듯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이 맞습니다. 그러나 공격할 때 모두 공격, 수비할 때 모두 수비가 아니라 공격수가 공격하다 공을 뺏기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최일선의 수비수 노릇을 해야한다는 뜻이지요. 상대 수비수가 전진 패스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할 임무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상식적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당시까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볼 소유가 상대에게 넘어가는 순간 수비는 수비수의 몫이라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거죠. 히딩크는 이러한 기초적인 것들을 선수들에게 체화시키려 노력했던 것입니다.
히딩크가 오기 전 국가대표팀의 포맷은 일대일 수비를 바탕으로 하는 스위퍼 시스템이었습니다. 스위퍼를 두는 이유는, 최종 수비수가 상대 공격수에게 뚫리면 바로 단독 찬스를 내주므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질적으로 스위퍼가 최종 수비수인 셈이죠. 스위퍼가 때로는 공격도 합니다. 팀이 지고 있을 때 공격 강화를 위해 위로 올리가기도 하는데 이 때 바로 '리베로'가 되는 것입니다. 94년 월드컵에서 홍명보가 뽑은 2골은 이 리베로 역할 수행 시에 나온 것입니다. 98년 월드컵에서 스위퍼 시스템을 쓴 팀은 딱 두 팀이었습니다. 마테우스가 있는 독일과 홍명보가 있는 한국. 다른 팀들은 모두 플랫 수비를 바탕으로 한 지역 수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대일 수비의 단점은 선수들이 상대 선수를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느라 체력 소모가 크다는 점입니다. 후반 중반 이후 한국 축구에 늘상 따라다니던 말이 '체력 저하'였다는 것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네덜란드를 이끌던 히딩크는 한국 팀의 연습 장면을 본 뒤 최전방 공격수 둘에게 서로 대각선 방향으로 교차하며 공격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연습할 때 공을 일부러 세게 찰 것을 주문합니다. 네덜란드라는 이름과 그들의 연습 장면을 본 선수들은 일단 심리적 열세를 보인 채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수비수들끼리 동선이 엉키기도 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수비가 중앙으로 몰릴 때 양 측면에 빈 공간을 쉽게 내준 것입니다. 이 공간에 오베르마스나 데부어 같은 빠른 선수들이 들어와 슛팅 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결국 5-0으로 지고 말았죠.
히딩크는 부임 이후부터 성적과 관계없이 자신의 스케쥴을 고수합니다. 선수들에게 플랫 수비와 Zone을 기본으로 한 압박 축구를 가르치고 중간 중간 어려운 시험 문제를 내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살피듯 강팀과의 연습 경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2002년 초부터는 그 유명한 '공포의 삑삑이', 곧 체력 강화 훈련에 들어갑니다. 언론이나 국내 축구 감독들의 비난 속에서도 그는 꿋꿋했습니다. 심지어 조모 감독에게는 초등학생한테 고교 수학을 가르치는 격이라는 비판까지 받았습니다. 히딩크가 무얼 하고 있는 지 잘 아는 이용수 기술위원장만이 옆에서 든든히 지켜줄 뿐이었습니다.
히딩크가 하루 1%씩 16강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할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와 치른 평가전에서 좋은 결과를 내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개막 이후엔 더 놀라웠습니다. 홍명보가 최종 수비수간의 호흡 불일치를 걱정하며 두려워했던 플랫 수비는 자리를 잡았고 보란듯이 수비 라인이 위쪽으로 올라가 미드필드진과의 간격을 좁혔습니다. 오프사이드에 부담을 느낀 상대 공격수는 활동 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연스레 우리 선수들의 체력 소모도 줄여주는 효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는데 수비라인이 올라온 상황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컸다는 것입니다. 상대 미드필더가 전방으로 볼 배급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인데 김남일은 이를 100% 잘 수행했습니다. 쉽게 볼 배급을 허용했으면 골키퍼와 1:1을 내주는 상황이 허다했을 것입니다. 여하튼 Zone의 개념을 확고히 한 선수들은 상대 선수의 동선을 주시하며 상대에게 볼 소유가 넘어가는 즉시 방사형으로 가장 가까운 선수들이 에워싸는 압박을 가했습니다. 98월드컵 우승 감독인 에메 자케는 이를 보고 최고의 압박을 보여준다고 격찬을 할 정도였습니다.
히딩크는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도 했습니다. 그 첫번째가 볼 점유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볼 소유가 넘어가 있는 시간은 우리에게 실점을 허용할 확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여 무모한 전진 패스는 지양하고, 특히 상대 수비진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뻥 차내는 패스는 하지 말아야 할 나쁜 습관에 들었습니다. 차는 순간 우리의 소유가 될 확률이 극히 적은 패스에 해당되었으니까요. 차라리 후방에서 백패스나 횡패스를 할지언정 말이죠.
히딩크는 감독 재임 중 경기 결과를 가지고 선수 탓을 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평소 분발을 요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혹은 경쟁심을 유발하여 경기력의 극대화를 꾀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했을진 몰라도 경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선수에게 묻는 일은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주어진 선수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연구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외부에서 그를 공격해도 그는 선수들의 신뢰를 전폭적으로 이끌어냈으며 16강 진출 후 자칫 해이해질 수 있는 선수들을 다잡기도 했습니다. 그의 심리전술 활용이 팀 피치를 올리는 데 톡톡한 효과가 있었음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이후 이탈리아 선수들이 거칠고도 지저분한 파울을 많이 하는 것을 아는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그들의 페이스에 말리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그가 데리고 있던 골키퍼 카시야스의 습관 및 다른 선수들의 킥 습관까지 알려줍니다. 이토록 그의 화려한 이력 속에 녹아 있는 경험은 우리 선수들의 세계(유럽) 축구에 대한 경험 부족을 훌륭히 메워주었습니다.
월드컵 후 그의 성공에 자존심 상한 일부 국내 감독들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자신들에게도 중간에 흔들지 않고 기회를 준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죠. 그러나 저는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스포츠 기자든 축구 감독이든 그 누구도 히딩크가 5-0으로 지는 날, 제대로 분석해 말해 준 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후추라는 사이트에서 그 글을 읽지 않았다면 저는 그냥 운 좋은 감독 아니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근엄한 선생님 감독, 차범근도 선수들의 재능이 거기까지 발휘될 수 있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제게 우리 선수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극대화시켜준 히딩크는 그저 고마운 존재입니다.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것도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ps.모레 새벽 히딩크 감독은 조국 네덜란드와 일전을 갖습니다. 기세가 오른 러시아지만 아무래도 현재의 네덜란드에게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모래알 조직력이라 일컫는 팀입니다. 선수들의 개성이 다양하여 한데 묶기가 힘들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지금까지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토탈사커의 창시자이자 네덜란드 축구계의 조순 선생님 혹은 변형윤 선생님같은 리누스 미셸 감독이 지휘하던 74월드컵, 유로88 그리고 카리스마의 히딩크가 지휘하던 98월드컵이 고작입니다. 그런데 지금 네덜란드는 80년대말 90년대 초 이름을 날리던 오렌지 3총사의 일원, 반바스텐이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명성과 카리스마가 어우러져 빛을 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이에 한껏 부응하고 있구요. 히딩크가 기던 러시아를 뛰게 만들었으나 날고 있는 네덜란드에게 어렵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 봅니다.